(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1647년 원문).
1643년, 잉글랜드의 장기 의회가 신앙고백서를 만들기 위하여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소집하였을 때, "교리문답"의 지침도 함께 정하였다.
총회는 허버트 파머에게 교리문답의 초안을 만들도록 요청하였으나, 로버트 베일리와 다른 스코틀랜드 대표들은 실망하였다.
12월에 교리문답을 작성할 위원회가 세워졌고, 1647년 1월에 총회는 하나의 교리문답을 쓰는 것을 포기하고 이를 둘로 나누었다: 초심자를 위하여 "읽기 쉽고 간결한" 소교리문답과, 더 정확하고 포괄적인 대교리문답.
교리문답은 1647년에 완성되었고, 이듬해 스코틀랜드 총회에 의하여 채택되었다.